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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향수의 유래, 대표 향수 침향, 헝가리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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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향수의 유래

향수 원료 제라늄


향수의 유래를 살펴보면 신과 인간과의 교감을 위한 종교행사 그 매개체로부터 출발하는데, 그 역사는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을 신성하게 여겨온 고대의 사람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몸을 청결히 하고, 향기가 풍기는 나뭇가지를 태우고, 향나무잎으로 즙을 내어 몸에 발랐다고 한다.
고대의 향료는 훈향(薰香)으로서 종교의식에 사용되었고 몸 또는 의복에 부착하는 풍습은 몸의 청정감과 함께 정신미화를 위하여 비롯된 것이다. 방향의 발상지는 파미르 고원의 힌두교국인 인도라는 것이 정설이다. 인도에는 후추를 비롯해서 침향 ·백단, 그 밖에 열대성 향료식물이 많아서 힌두교의 분향의식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향수는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화장품인 셈이다. 그후 향수는 이집트 문명권을 거쳐 그리스와 로마 등지로 퍼져 귀족계급의 기호품이 되었다. 당시의 상인들은 부피가 작고 값이 비싼 향료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한국에서도 오래 전에 향수가 보급되었는데 372년에 고구려의 승려가, 382년에 백제의 승려가 각각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오면서 향료도 함께 수입하였다고 한다.향료 사용의 대중화는 신라시대의 귀부인들로부터이며, 그것은 향료주머니, 즉 향낭(香囊)을 몸에 지녔다는 것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대  대표 향수 침향

황금보다 비싼 침향
‘향 중의 왕’이 있으니 침향(枕香)이다. 침향은 오랜 고목의 상처에서 수지가 굳어서 만들어진다. 고대에 침향은 그 뛰어난 향과 다양한 치료 성분으로 인해 귀중히 여겨졌다. 향수와 약제를 만드는 데 쓰였다. 몸의 악기를 제거하고 기 운행을 순조롭게 하여 질병을 치료한다. 시신에 바르는 방부제로 쓰기도 한다. 침향은 내질환계의 모든 통증 완화, 영혼을 정화시키기, 한방의학 등의 중요 약재로 팔렸다. 중세 중국에서 모든 의식과 사적 영역에서 침향이 큰 역할을 맡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나무에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다가 불을 붙이면 그윽하고 오묘한 향을 피우는 데 다른 향에 비할 수가 없다. 향 내음 자체도 약재 효과가 있다. 큰 조각은 베개로도 사용됐다. 고려 의종 5년(1151) 기록에 침향목으로 관음보살상을 제작하였다고 했다. 현전하는 불감(佛龕)에도 침향목이 발견된다. 엄청나게 비싼 목재로 불상을 조성했다는 뜻이다. 이들 침향목은 배를 이용하여 한반도에 당도하였을 것이다. 침향은 무게 당 금으로 값이 치러졌다. 침향 화물 하나만 손에 넣으면 그 상인은 평생을 부유하게 살 수 있었다.

침향은 베트남, 미얀마, 태국, 중국 해남도 등 남방에서 산출된다. 그런데 단연 최고의 침향은 베트남 산이다. 베트남의 월족이 아닌 참파왕국에서 주로 침향을 생산하여 수출했다. 고대왕국 참파는 역사적으로 베트남 중북부에서 남부에 걸쳐있는데, 월족의 압력에 의해 서서히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다가 19세기에 남부에서 멸망하게 된다.

다낭 공항에서 미손(美山, My son) 유적까지 40㎞. 꽝남(Qung Nam)성 주이푸(Duy Phu) 골짜기에 참파 문명이 숨어 있다. 참파 사람은 대단히 예술적이고 사는 것이 넉넉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풍수, 자잘한 실개천이 곳곳으로 굽이치는 언덕에 거대한 건축군을 세우고 오랫동안 살았다. 시바 여신이 기거하는 메루산(Meru Mountain, 須彌山)을 본당으로 삼고 우주를 상징했다.

이 문명의 기본 성격은 인도의 강력한 영향에 놓여 있다. 본디 아마라바티(Amaravati)는 벵골만에 위치한 중인도 권역이다. 해상왕국 오디샤와 지척이다. 아마도 이들 지역에서 건너온 일군의 인도문화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미손은 힌두의 종교적 센터였다. 시바 여신을 비롯한 다양하고 풍부한 힌두문명의 그림자가 잔존한다. 북부 베트남이 오랜 기간 중국 식민지였다면, 중남부 꽝남, 빈딘, 나짱, 판랑 등 전역에서는 참파왕국에서는 인도양을 건너온 문명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조심해서 살펴봐야 할 것은 참파 문명에는 힌두-불교 요소가 강력하게 융합되어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참파의 전략적 수출품은 침향
참파의 중요한 경제 활동은 농업이 아니었다. 참파 주민은 본디 바닷사람으로 뛰어난 항해술을 가졌으며, 황소나 물소가 끄는 우마차를 이용해 육상 수송로도 개척했다. 다양한 이동 수단을 통해 산간 내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무역망을 건설했다. 내적 무역망과 해외에서 들어온 상인과의 교역을 통해 부를 창출했다. 국제 무역은 참파의 푸라(邑) 연안에서 이루어졌다. 각기 다른 시기에 세 항구가 다른 항구보다 더욱 발전했는데, 이 항구의 베트남식 명칭은 끄어다이찌엠(호이안), 티나이(꾸이년), 그리고 남쪽의 판랑이었다.

참파의 수출 무역품은 금과 은, 보석, 실크, 향신료(정향, 계피, 카다멈), 동물(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희귀새), 동물성 식품(밀랍, 호랑이 가죽, 상아, 코뿔소 코, 공작새 깃털, 거북이 등껍질), 귀중한 나무(흑단, 침향, 백단, 장뇌), 심지어 노예를 망라했다.

참파에서 산출되는 수출품목 중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무역품이 침향이었다. 당 시대에 중국인은 최고 품질의 것을 특별히 침향이라 불렀다. ‘침’이라는 말은 물보다 비중이 무겁기 때문에 붙여졌다. 나무를 잘라서 몇 년이고 쌓아두면 나무가 썩어서 마디만 남으며, 이를 물에 담그기 때문에 침향이라 했다. 수지가 25% 넘으면 물속에서 가라앉는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물에 뜨는 향은 전향(煎香)이라 구별하여 불렀으며, 의료적 효능이 없는 싸구려라고 했다. 반은 뜨고 반은 가라앉는 향은 잔향(棧香), 물에 뜨는 향은 황숙향(黃熟香)이라 불렀다. <송사>에서도 전침향(箋沈香)을 언급했다. 전침향은 고급향이 아닌데 <송사>에서 특산품으로 언급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침향보다 값싼 전침향이 다량으로 수입됐던 것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만큼 당대에도 비싼 향이었기에 일찍부터 가짜 향이 범람했다.

침향은 서양에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8세기에 오만의 이슬람 상인이 당에 가서 침향을 샀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슬람권 사람들이 말하는 ‘중국’은 침향의 산지는 아니지만, 침향 시장은 있었다. 9세기 아랍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는 <제도로 및 제왕국지>에서 가라향(伽羅香)을 언급했다. 가라는 산스크리트어로 ‘검다’는 뜻이다. 중국인이 검은 침향목을 즐긴 데서 비롯됐다.

가라향은 침향 가운데 최상의 것으로 쳤다. ‘점성(참파)에서 나오는 가라향이 최상의 것’이라고 했다. 아랍 상인에게 중요했던 것은 침향의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수준 높은 참파의 침향을 상인들이 얻고자 했고, 이들 참파의 숲에서 나는 침향은 왕조를 번영시키는 기반이었다. 마르코 폴로도 챰파에서 침향이 다량으로 나온다고 했다.

베트남의 산간에서 산출된 침향
명나라의 마환은 <영애승람>에서, “산에서는 오목(烏木)과 가람향(伽藍香), 관음죽, 강진향이 생산된다”고 했다. 가람향은 침향의 별칭으로 가라향과 같은 뜻이다. 산에서 생산된다는 대목에 주목한다. 전문적 침향 채집가는 엄격한 관례에 따라 이 귀중한 나무를 찾았다. 이 관례 중에는 산지인 감독 하에 참족과 산지인(라갈라이족)이 협력한다는 점, 출발 전과 복귀 후에 제물을 바치는 의식, 탐색 중 침묵을 지키는 규칙, 그리고 전문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 등이 포함된다. 한국으로 치면, 심마니의 산삼 채취 관행에서 나타나는 금기와 의례가 적용됐다. 침향은 참파 경제에 중추 역할을 했으며, 침향의 지위는 참파 사람의 종교적 믿음을 반영한다.

참파 사람은 산간부 원주민에게 의뢰하여 병해를 입은 침향을 조달했다. 참파산 침향은 아퀼라리아속 크라스나종으로 오늘날도 베트남 중부에서 발견된다. 이 나무는 보통 상태에서도 향이 나며 베트남어로 끼남이다. 가장 높이 평가되는 종은 나무가 감염, 손상되거나 오래됐을 때, 또는 상처로 인해 응집 작용이 일어날 때 생성되는 수지 물질을 함유한다. 수지는 가파른 너덜지대나 특정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주로 생성된다. 침향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각종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일종의 수액이 나오며 이것이 굳어지면서 침향이 된다. 수액이 굳어져 침향이 되기까지 수십 년에서 길게는 1000년이 걸리기도 한다. 침향나무 한 그루에서 채취할 수 있는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귀한 약재다.

19세기까지도 참파 사람은 가라(Gahlao)라는 침향을 산간에서 구해다가 팔았다. 빈투언에 있는 무슬림 참파사람은 오랑글라이(Orang glai, 숲의 사람)라고 부른 산간지방 원주민과 손을 잡고 부지런히 침향을 모았다. 19세기까지 침향은 참파나 안남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의식의 중요 물품이었다. 오늘날에도 옛 참파의 땅 호이안에 가면 거리에서 침향 가게를 만난다. 1000년 넘은 전통이 그들 현대식 침향상점에 남아 있는 셈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침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격이 비싸다. 싼 것은 진짜 침향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헝가리위터가 최초의 증류향수

근대적 의미의 향수가 나온 시기는 1370년경으로서, 지금의 ‘오 드 트왈렛’풍의 향수인 ‘헝가리워터’가 발명되었다. 이것은 헝가리의 왕비인 엘리자베스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증류향수이며, 최초의 알코올 향수이다. 이 향수로 인하여 그녀는 70세를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의 왕으로부터 구혼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뒤 1508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있는 성 마리베라의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향료조제용 아틀리에를 개설, ‘유리향수’를 제조하면서부터 그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1533년에는 피렌체의 명문가문인 메디치가(家)의 딸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프랑스의 앙리 2세가 결혼하면서 그녀의 조향사(造香師)인 L. 비앙코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향료 ·향수가게를 열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향수전문점이다.

종교의식에서 시작된 훈향이 명문가의 향낭이 되고 향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속에서 문화와 문명의 진화과정을  알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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